정치인,기업인 사주

차지철 사주(대통령 경호실장)

머털도사 오경준 2014. 5. 19. 21:57

 


차지 전 정무직공무원, 전 국회의원
출생-사망
1934년 11월 6일 (서울특별시) - 1979년 10월 26일
학력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
1974~1979 제3대 대통령경호실 실장
1963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차지철 사주;1943년 11월 6일 음력 寅시

구분




乾 命
81세
   당령
12운성
地殺亡神災殺華蓋12신살

 

 


796959493929199









1963년30세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4선의원을 지냈으며 1974년 41세에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었으며 1979년 46세에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저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차지철 사주의 貴는 어디서 찾을수 있는가?

丁화일주가 비록 子월에 생하여 득령였으나 子수가 공망이되고 水를 생하는 金이 없고 火와 

燥土(조토)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라 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官)이 약하다.

일간인 丁은 시상의 壬수 정관과 합하였는데 시지는 寅목 인수로 관모(官帽)를 쓰고 있으며 일간인

丁과 합을 이루고 있으니 이는 차지철이 當官(당관)하는 命임을 나타낸다.

(이사주는 신왕사주에 官을 쓰는 사주이다)

또한 壬寅은 일간을 통제하는 尊長(존장)이며 상관(上官)이 되니 박정희 대통령이 된다 하겠다.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은 시지의 寅이 인성으로 년간 甲목의 건록이라는 것이다.

年上은 그 자체의 宮으로써도 아버지와 같은 尊長의 자리이며 갑의 祿인 寅이 官의 모자(壬)를

쓰고 일간과 합하였으니 차지철을 이끌어주고 출세시켜준 아버지와같은 존재이며 또한

차지철을 통제하는 위치에 있는 박대통령을 나타낸다.

시지이 寅은 甲의 록이면서 년지戌과 반합으로 그 상관관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즉 시지의 壬寅이 단순히 관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특정인 임을 드러내 주고 있다)


차지철의 사주를 감정하며 이 사주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말년에 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는점과 박대통령의 죽음까지도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의 壬은 寅에 앉아 실제로는 그根이 없고 월지 子수는 거리가 멀고 곰망이되어 약하며 

壬의 뿌리가 되지 못한다.

관이 이토록 약하니 원래는 관직을 나타내는것이 아니라 다만 명예나 명성을 나타낼뿐

실제로는 官命이 아닌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4선의원을 지내고 경호실장을 하며 4공화국 정권말기에는 2인자로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룰수 있었는가?


丁일간의 천을귀인은 亥와 酉로 亥가 官貴(관귀)가 되는데 바로 차지철이 사주에서 亥가

戌과 子사이에 공협(空挾)되어 허귀(虛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亥수 천을귀인이 바로 일간이 합한 壬의 록이되니 일주 丁巳가 지닌바 官이 매우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차지철의 사주에서는 바로 이 허귀의 작용과 그것이 대운과 세운에서 깨져나가는 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 사주가 貴命이 된 이유와 己未년에 사망하게 된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46세에 총탄에 맞아 비명횡사한 사주를 貴命이라 하니 다소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리는 그 貴賤(귀천)의 판단이 다분히 세속적인 것이며 인품이 높거나

장수한다 하여 富貴가 없는 사람을 貴命이라 하지 않는다.

차지철의 명조는 분명한 귀명이나 단지 귀함이 오래 가지 못했고 뒤끝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이 사주의 대운이 바뀌는 시기는 10살 8월 3일(양력)을 전후한 시기이다.

경진대운의 辰운이 시작되는 시기는 1978년 8월 3일 전후이다.

45세인 78년부터 차지철의 월권과 통제불능 상태가 심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辰운에 이르게 되면 진술충으로 戌이 깨지니 공협(空挾)되어 허귀(虛貴)로 존재하는

亥수 官이 달아나게 된다.

즉 이때부터 차지철이 점점 박대통령의 통제권을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는 것이니

정권말기에 이르러 그 기가 쇠하여 부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모습이

壬수의 根인 亥수가 깨지자 壬이 일간 丁을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차지철은 경호실에서 국기 하강식이라는 의식을 만들어 장관들을 강제로 참여시키는가 하면

<대통령 경호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만들어 중앙정보부장,국방장관,내부장관,검찰총장,치안본부장

육해군 참모총자등이 위원을 맡고 자신이 위원장을 맡음으로서 사실상 실질적인 2인자의 노릇을

하는등 정권 말기의 부작용이 극심하였다.)

 

기미년에 이르자 未토가 子수 관을 천(穿)하니 남은 관마저 깨지고 寅은 未의 墓를 만나 

입묘(入墓)하니 용신이 모두 깨지고 부서지며 자신의 상관인 대통령(壬寅)도 함께 죽음을

맞게 된것이다.

마지막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것은 壬寅 이 비록 자신에게 더없는 은혜를 베풀어준

尊長으로 출세길을 열어주게 되지만 일지인 巳를 刑하니 문제가 있게 된다.

寅巳형은 주로 화약,폭발,총기,화재 등에 의한 사고나 죽음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丁壬合은 또한 자신이 모시는 상관이 사고를 당할때 함께 얽혀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는 상징이된다.


1966년 33세 己卯대운 丙午년에 송희성과 결혼하였고 

1969년 36세 己卯대운 己酉년에 다시 윤보영과 재혼하였다.

 

대한민국 특전사령부 창설요원으로 태권도 5단 유도 4단 검도 3단 이다.

그의 사후에 돈과 여자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청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1987년 신문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차지철의 미망인 윤보영이 대주신용금고 대주주인

김신일,김신영 형제에게 14억원을 빌려준뒤 그 돈을 떼였다는 기사가 났다.

돈을 빌려준 시점은 1981년 이전이며 윤보영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부정축재한 돈임을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하자 소문이 날까봐 말한마디 못하고 1981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0.26당시 김재규의 한달 월급이 60만원 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14억원이라는 돈을

정상적으로 모았으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뉴욕에서 30년이상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한 재미 교포는 차실장의 처남(윤보영의 오빠)이

원패밀리 하우스 17채를 팔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며 이 재산이 틀림없이 차지철과

관계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자신이 모시던 박대통령에게는 충성을 바쳤지만 그 지닌바 성품은 사주에서 볼때

인성인 寅이 일지 巳를 형으로 깨고 있기 때문에 반듯한 성품을 지녔다 보기 어렵고 오히려 

막가파 식의 횡포를 부리게 된다.

자신의 보스인 박대통령에 대해서는 강직함으로 충성을 바쳤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오히려 

함부로 대하는 깡패 기질이 다분했다고 볼수 있다.

박대통령에 의해서만 그 거친 기질이 통제를 당했었는데, 정권 말기에 이르자 박대통령이 차지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차지철의 월권과 횡포는 위험 수위를 훨씬 넘어 있었다.  


머털도사

신생아 작명,개명,성명감정,아기이름,

사주,궁합,택일,육효,당선,입학,취직,진학,가출인 소식,

묘지 가택의 길흉,관재및 소송,건강,질병,부적

잉태및 태아의 남녀구별,매매의 성사 등등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상담안내>란을 읽어보세요

천지철학관  상담및 예약  010-3956-8911, 032-773-8911

이메일; ilsim64@naver.com

<검색창>에서 천지철학관(머털도사 천지철학관) 을 검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