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기업인 사주

영조대왕 사주/논개 사주

머털도사 오경준 2014. 10. 11. 16:08






영조대왕과 논개의 사주로 알려져 있는 四甲戌의 사주이다.

논개의 사주는 술년술월 술일 술시에 낳았다고 해서 개(戌)를 낳았다 는 의미로

<논개>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 .

논개(論介)라는 이름은<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붙여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영조는 조선조의 21대 왕으로 극귀의 명으로 83세 까지 장수하였는데 아무리 남녀의 사주가 대운이 

역순으로 흐른다 해도 똑같은 사주가(논개) 천한 기생의 命으로 태어나 2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사주의 貴賤은 대운과 상관없이 原局에서 이미 정해지고 대운과 세운을 통해 成敗와 吉凶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사주링크(http://www.sajulink.com/ssManse/pop_find_birthday.jsp)에서 논개의 사주를 

간지로 넣어 보았다.

 
적합한 년도의 생일로 선택해 주세요.선택
양력 1994년 10월 15일 20시 0분 0초 토요일 
(음력 1994년 9월 11일 20시 0분 0초 )
양력 1934년 10월 30일 20시 0분 0초 화요일 
(음력 1934년 9월 22일 20시 0분 0초 )
양력 1754년 10월 13일 20시 0분 0초 일요일 
(음력 1754년 8월 27일 20시 0분 0초 )
양력 1694년 10월 27일 20시 0분 0초 수요일 
(음력 1694년 9월 9일 20시 0분 0초 )
양력 1514년 10월 12일 20시 0분 0초 월요일 
(음력 1514년 9월 15일 20시 0분 0초 )
양력 1454년 10월 26일 20시 0분 0초 목요일 
(음력 1454년 9월 26일 20시 0분 0초 )

 

영조대왕의 사주인 1694년과는 일치하나 논개의 출생년인 1574년과는 일치하는 사주가

나오지 않는다.

논개는 1574년(甲戌년) 9월 3일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생활을 하던 

朱達文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영조대왕과 논개의 사주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영조대왕의 사주

구분




乾 命
321세
   당령
12운성
華蓋華蓋華蓋華蓋12신살

 

746454443424144








 

 

영조대왕의 기문국은 아래와 같다. 

 

기문둔갑은 그 특성상 이렇게 천간 지지가 오직 하나로 구성되어 있는 특수한 사주의 경우에 

흉명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기문국의 특성이 사주를 구궁에 배치하여 그 通氣를 중시하여 보기 때문인데 위에 보는 바와같이

복음국이 나오고 년지 월지 시지,일지세효가 乾宮에서 四八충으로 중궁의 八四와 또한 交沖을 이루고

있으며 년월일시간이 모두 坎宮에 자리하여 있다.

따라서 이런 사주는 기문으로 풀기보다는 일반적인 사주로 보는게 더 낳을것이다.

그러나 기문에서 나타나는 한두가지만 살펴보면. . .

첫번째 아들인 사도세자에 관한 것이다.

震궁의 陽孫인 1水가 육친으로 아들이요.

宮位로 살피면 時干궁인 坎궁의 九금이 아들인데 坤궁대운인 68-69세 운에 이르면 곤궁이

12지지의 九금 方으로 은복수인 9와 곤궁상수 2 그리고 시간궁(일간궁 으로 준동처)의 3이

3 2 9 삼형을 이룬다. 시간궁은 본래가 九三충을 이루고 있는데 곤궁대운에 은복삼형을 만나

9금에 의해 시간궁의 상수 三목이 깨지는 상황이이 오니 아들이 죽음을 맞았다.

1762년 영조대왕 69세때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속에 가두에 죽게 하였다.

사도세지의 죽음은 지금도 그 이유가 정확치 않다.  

노론의 불만을 수습하기 위해서 였다는 설과

권신들과 정순왕후의 모함에 빠져서라는 설

그리고 사도세자의 이상성격(정신질환)으로 임금이되기에 부적절한 인품이라서 미리 제거를 

했다는 설등이 분분하다.

현재 sbs 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비밀의 문(의궤살인사건)이 사도세자의 죽음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시간궁(자식궁)인 坎궁의 태을구성과 팔문으로 작괘(作卦)하면 수뢰둔(水雷屯)괘가 나오니

이 괘로써 사도세자의 운명을 추론하면 우뢰 소리가 물속에 갇혀 멀리 퍼져나가지 못하니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거나 주변의 동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어렵고 험난한 상황이다.

이괘는 마치 물에 빠져 익사(溺死)하는 것과도 같다.


머리에 金木충이 들어오면 미쳤다가 제정신 들었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영조의 사주에서 일지세효 자기자리와 중궁에서 서로 金木충으로 交沖이 되어 있어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당시에 어떤 복잡한 정치적 상황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수는

없겠으나 자신의 아들을 뒤주속에 가두어 8일만에 굶어죽게 만든 상황을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보긴 어렵다.


사주를 다시 살펴보면

구분




乾 命
321세


46454443424144








천간에 4개의 甲木이 一氣를 이루고 있는 천간일기격으로 甲목은 死목에 해당하니

乙亥, 丙子대운이 甲목을 썩게 만들므로 대체로 凶運이다.

그러나 지지에 戌토가 있어 土克水하여 제습(除濕)하니 크게 꺼릴바가 없다.

지지의 4戌토는 화개살로 영조대왕의 전생이 농산스님 이었음를 감안할때 깊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영조대왕의 전생 ☞   http://blog.naver.com/ilsim64/220146882054 )

또한 천한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나 임금이 되어 가장 오랜기간(52년간)재위하며 많은 치적을 남긴것이 모두 전생에서 깊은 수행의 경지와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정조는 영조와 더불어 조선후기의 중흥기를 이루었던 왕으로 평가 받는다.) 

 

아들이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사주의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인수는 모친이고 재성은 부친이고 관성은 아들이다> 라는 식의 육친 구분에 매어있으면

이 사주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찾아낼 수가 없다.

혹자는 戌중의 辛금이 관성으로 아들인 사도세자 인데 辛巳대운에 나타나 克을 받으니 

사망했다 라고 그렇듯하게 가져다 붙일수도 있겠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사주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더불어, 영조의 뒤를 이은 世孫인 정조대왕이 함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4개의 지지 戌토가 세손인 정조를 나타낸다.

甲목은 정조대왕이며 甲목이 생하는 火는 아들인 사도세자인데 사주에 신식상관인 자식

午화의 무덤인 4개의 戌토인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반드시 아들을 죽이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주이다.

손자인 戌토 는 또한 막강하여 비록 아들을 뒤주속에 가두어 죽이는 비운의 아비가 되었으나

자신의 뒤를 이어 보위를 물려받은 정조는 조선왕조 후기의 가장 중흥기를 이루었던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甲 - 午 - 戌 (아버지 - 아들  - 손자)로 이어지는 운명의 큰 틀이 이 사주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1762년(영조 38년) 69세 辛巳대운 壬午년에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다.

壬午년에 자식인 午화가 戌에 입고되어 죽은 것이다.

아니 무슨 소릴?

戌이 형충으로 개고(開庫)된것도 아닌데 무슨 입묘?

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 .

대운을 잘 살펴보시라! 

辛巳대운이다. 

辛은 戌중의 辛금으로 戌토가 동(動)하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영조대왕이 사주에서 이해에 자식이 죽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28세인 1721년 丁丑대운 辛丑년에 이복형인 경종의 王世弟로 책봉되었고

31세인 1724년 丁丑대운 甲辰년에 경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83세인 1776년 壬午대운 丙申년에 승하하였다.

甲목은 壬午대운을 만나 午戌 火局을 이루어 焚木되니 死한다. 

死木인 마른 나무가 강한 불을 만나 불에타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머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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