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기업인
김우중 사주;1936년 12월 19일 음력 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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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丑 공망
김우중 전 회장이 몇일전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김우중과의 대화 - 다시읽는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이책을 통해 당시 경제관료들이 대우를 기획해체 했고 자신과 대우는 희생양 이었다고 밝혔다.
대우는 한때 국내의 재계서열 2위에 올라있던 기업이며 1998년당시 22만명(해외사업장 포함)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런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여그룹이 해체되게 된 이유가 무었인가?
사주를 살펴보면 사주의 초보자가 살펴봐도 재다신약의 사주로 일간인 戊토가 의지할 곳은
일지인 午화밖에 없다.
<재다신약의 사주가 대운을 잘 만나서 승승장구하다가 戊申대운에 이르러 몰락했다>고
누구나 손쉽게 설명할듯 하다.
그러나 그렇게 일반적인 재다신약의 명조라면 몰락은 그렇다 쳐도, 재계 2위의 거대기업으로 까지
성공이 가능한 명조인가 사주원국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이 사주는 일반적인 재다신약사주와는 그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재다신약사주라면 아무리 巳午未대운이 받쳐준다 하더라도 큰 성공을 거두기가 어렵다.
대우그룹히 해체된지도 벌써 1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적지않은 대우맨들이 모여서 나름대로
물심양면으로 김우중 회장을 도우며 대우의 세계경영 정신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룹이 완전히 해체된 상황에서 김우중 회장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면 결코 쉽지않은 일일것이다.
지지에 亥子丑의 글자가 모두 있으나 方局을 이루고 있는것은 아니다.
일단 이 사주는 혼자서 1인 100역을 해내는 맹장(猛將)의 사주다.
午화는 陽刃으로 타오르는 용광로의 불처럼 강렬한 기질을 지닌다.
이는 陽刃이 희용신으로 유용하게 쓰일때에 한해서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 사주가 바로 그렇다.
이사주는 일간인 戊토가 癸수 정재를 무계합으로 制하고 일지인 午화가 亥중의 甲과 壬을 갑기합
정입함으로 合制하여 財와 官을 모두 제(制)하고 있다.
김우중의 해외 활동을 보면 아프리카등 개발도상국의 국가원수나 고위관료들과 먼저 교분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그 나라에서 기업활동을 해나갔던 것을 볼수 있다.
여기서 많은 역술인들이 지지가 亥子丑을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午火가 亥水를 제압할수 있는가?
오히려 반대로 해자축이 세력을 이루어 일지인 午화를 제압하는 구조아닌가?
하고 반박해 올것이다.
물론 얼핏 보면 그렇다.
그렇나 그렇지가 않으니, 여기에 이 사주가 일반적인 財多身弱 사주와 구분되는 특별함이 들어있다.
월주 辛丑 金과 金庫로 모두 식신 상관의 세력이다.
즉 丑토를 辛금과 묶어서 하나의 세력으로 봐야지 단순히 丑은 土로써 겁재에 해당한다 라는 식의
六神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辛丑은 식신 상관으로 김우중의 手下人들과 그 세력이 모였는것이니 김우중이 부리는 임직원
들로 보게 되는데 상관庫인 축토가 일지 오화를 충하는 子수를 자축합으로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년주 丙子와 월주 辛丑은 그렇게 干支가 합으로 묶여 凶神인 丑토가 午화를 설기하며 천괴(穿壞)
하는 작용을 하지않고 오히려 흉신인 子수와서로 합반으로 묶여 있으니 이는 흉신이 흉신을
묶어두는 最吉의 모습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午화가 亥수를 제압할수 있는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사주의 원국이 이런 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대운의 흐름이 巳午未운으로 흐르게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일주 戊午는 대운의 흐름을 타고 大財인 癸亥를 合制하여 승승장구하게 되니 여기에는 일지인 양인
午화의 작용과 그 특성이 150% 발휘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주의 구조가 이러하기에 재다신약의 사주로 보이는 이 명조가 대재벌의 위치에 가지 오르게
된것이다.
상관인 辛丑은 단지 흉신을 묶는 작용만 하고 주공(做功)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功神은 일간과
일지가 되니 오로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 처리하는 특성을 보이며
마키아벨리적 사고방식과 독불장군 식으로 기업을 운영하여 왔다.
회장시절 수행비서가 2년이 지나면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 더이상 김회장을 따라다닐수 없을정도라
1~2년에 한번씩 수행비서가 교체 되었다고 할 정도로 강철 체력이었다.
또한 경기고등학교 시절엔 불량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을 일삼기도 했고 한번은 자신보다 훨씬
체격이 큰 학생과 맞붙어 싸워서 피투성이가 될정도로 얻어 터졌으나 피투성이의 몰골로 몇날 몇일을
집앞까지 쫓아가 싸움을 걸어서 상대방이 나중에는 겁을먹고 싹싹 빌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戊午일주 대체로 겁이없고 물러설줄 모른다.
강력계 형사나 깡패등에게서 많이 보인다.
그러나 승승장구는 정미대운 까지다.
戊申대운이 시작되는 62세 1998년 戊寅년부터 대우는 몰락하기 시작한다.
IMF가 시작되었으나 김대중정부 초기에는 잘 버티는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 뿐이다.
63세인 1999년 己卯년에 결국 대우그룹은 해체되고 김우중 회장은 이해 11월에 출국하여
6년간을 해외를 떠돌며 긴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戊申대운에 戊운은 신약사주가 비견인 戊토를 만나 도움을 받는것이 아니다.
대운의 戊토는 바로 일간 자신이니 일간인 戊가 申의 병지(病地)에 앉아 無力하고 설기되며
대운의 지지는 申이 子와 合으로 動하여 申子合이 午화를 沖해오며 亥수를 生하니
어찌 힘이 빠져버린 戊午가 시주인 癸亥를 制伏시킬수 있겠는가?
癸亥를 制할수 없으니 파재(破財)의 운이다.
31세인 1967년 甲辰대운 丁未년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하여 글로벌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김우중 회장은
1999년 己卯년에 卯가 일지 午를 破하니 그룹이 완전 해체되고 도피생활이 시작되었다.
김우중 회장이 회고록을 통해 DJ정부와 당시의 관료들에 대해 그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는 듯 하다.
이른바 DJ정권과 관료들에 의한 <기획해체>이며 자신과 대우는 그 희생양 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회장의 이 말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당시는 대한민국 전체의 경제 자체가 붕괴되기 직전의 어려운 시기였다.
대우그룹에 대한 검찰이 수사발표 내용은
분식회계 41조
200억달러 외화유출
사기대출 10조 . . .
세계 경영을 표방하며 사업의 무리한 확장으로 특히 자금 조달기능이 매우 취약해 졌고
무모한 차입과 투자가 대우그룹 해체의 핵심 원인 이라고 보는것이 상식적 판단일 것이다.
대우를 회생시키려고 안간힘 쓰던 김회장이 당시에 IMF 해법에 대한 시각이 서로 달랐던
정부와 관료들에게 섭섭함이야 있었겠지만 대우그룹의 몰락은 전적으로 김우중 회장
본인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할것이다.
화려한 성공과 몰락 그 明暗이 아주 진하게 교차하는 사주이다.
<김우중 회장의 4無 >
無酒(술을 마시지 않는다)
無色(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無遊(놀지 않는다)
無家(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아예 가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에만 미쳐서 살았던 기업인 이기도 하다.
28세인 1964년에 결혼하였으며
54세인 1990년에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丁未대운 庚午년)
머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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