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기업인 사주

박정희 대통령 사주/ 박정희 성명 파자

머털도사 오경준 2011. 11. 15. 19:44

 

박정희 전 대통령

출생-사망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 - 1979년 10월 26일
가족  배우자 육영수, 아들 박지만, 딸 박근혜, 박서영
학력  육군사관학교
경력  1978.12~1979.10 제9대 대한민국 대통령
        1972.12~1978.12 제8대 대한민국 대통령
        1971.07~1972.12 제7대 대한민국 대통령
구분




乾 命
95세
      당령
12운성
劫殺 亡神 驛馬 地殺 12신살

 

대부분의 명리서적이나 인터넷상에 소개되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명조가

위와같이 寅申巳亥가 구비된 사맹격(四孟格)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가족들을

통해 분명하게 증언된 출생 시간은 오전 11시 쯤이다.(巳時 末, 壬午시일 가능성은 없으므로) 

따라서 위와같이 소개된 명조는 모두 잘못된 것이니 이 글을 읽는분들은 착오가

없길 바란다.

위 사주를 통해 다들 그럴듯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 .

 

실제의 사주 구성은 아래와같다.

구분




乾 命
95세
      당령
12운성
地殺 亡神 驛馬 地殺 12신살


72 62 52 42 32 22 12 2








 

火土 없음

子丑 공망

일지 申은 고신살(홀아비살)

 

정확한 대운의 변경시기는 3살 12월 3일 경으로 전후 약 5일 정도 오차가 있을수 있다.

따라서 63세 때인 1979년 10월 26일 사망시점은 실제로는 甲辰대운이 시작되기 한달

전쯤으로 巳대운의 끝 무렵이다.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빈농의 가정에서 5남 2녀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91년도 쯤이던가 차를 타고 구미를 지나면서 바라본 금오산(金烏山)의 모습은

사람의 얼굴 형상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모습으로 이마와 눈,코,입 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어 참으로 기묘한 모습이다 하고 감탄을 하며 바라본적이 있다.

금 까마귀(金烏)는 곧 태양속에 사는 전설의 새 三足烏가 아닌가?

박대통령의 얼굴이 유난히 까무잡잡 했던것이 모친이 임신중에 아이를 떼려고

간장을 하도 많이 마셔서 그렇다 하는 얘기가 있기도 하나

금오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인물이어서, 그얼굴이 유난히 까마귀의 검은 윤기가

도는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정희의 인생 행로를 쫒아가다 보면 우리 역사의 고단하고 굴곡진 모습과 근현대사의

명암(明暗)이 복잡하게 교차하게 됨을 느낀다.

 

庚申일주가 亥월에 생하여 金水 식신격으로 丁화가 庚金을 제련하고 巳중 丙화가 조후를

이룬 중화(中和)가 잘이루어진 사주이다.

庚申일주가 一見하여 강해 보이긴 하나 官星에 의해 잘 다듬어진 정돈된 모습으로 

무엇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엄격한 모습이다.

박정희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군복을 입고 검은 선그라스를 쓴 무표정 하고 차거운 모습이

제일 먼저 연상되기는 하나 선입견없이 사주를 바라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차갑고 냉철한

모습과 달리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음을 사주를 통해 알수있다.

 

경신일주의 특성상 무쇠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운 모습이다.

냉철하고 결단력이 빠르며 맑은 가을 하늘과같이 그 정신이 총명하다.

월지 亥수 식상으로 旺氣를 설하는데 巳亥 충으로 역마를 충하여 그 활동력은

더욱더 왕성하고 활발해진다.

巳亥 충으로 비록 亥中의 甲목 처재(妻財)성은 충파되어 부셔지니 재물과는 인연이 없고

재성이 손상됨으로 인하여 본처와 이혼후 육영수 여사와 재혼하였고 육여사 또한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처를 사별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으나

亥중 壬水 의 식신 행동력은 손상되지 않으므로 평생에걸쳐 부지런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살았다.

다만 金水 식상격은 그 특성상 다소 과묵하며 말수가 적은 편이니

같은 식상격이라 해도 火土 상관격과는 전혀 대조적인 것이니 庚辛의 氣는 수렴을

위주로하고 火일간은 발산의 氣가 되는 연고라 화토상관격이 다변(多辯)함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21세 때인 1937년(丁丑)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문경소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24세, 戊대운 庚辰년(1940)에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관학교를 최우등으로 수료후

일본군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하게 된다.

28세, 申대운 甲申년(1944)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후 관동군에 배치되었고 이후 광복이

될때까지 일본군 장교로 생활하였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남로당에 가입했던 전력과함께 많은 비난과

시비거리를 만들게 된다.

소학교 선생을 하다가 갑자기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이유에 대해 후일 술회하길

그냥 큰칼을 허리에 한번 차보고 싶었다고 한다.

30세, 申대운 丙戌년(1946) 귀국하여 육사2기로 입학하여 졸업후 대위로 임관하였다.

 

32세, 申대운 戊子년(1948) 정보국 장교로 근무할때 군내 남로당 사건에 연루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동료와상사들의 구명운동에 의해

복역이 면제 되었으나 군인의 신분이 박탈되었다.

(30세 때인 1946년 丙戌년 10월 1일 형 박상희가 좌익 시위를 주도하다가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박정희는 형 박상희에 의해 적지않은 사상적 영향을

받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48년 당시 박정희는 이화여대 학생이던 8살 연하의 이현란과 약혼을 하여

관사에서 동거중이었고 박정희의 남로당 연루사건 이후 이현란은 박정희와 불화하다가

헤어지게 된다.(실제로는 몰래 짐을 싸서 박정희에게서 도망침)

당시 박정희는 20세인 丙子년(1936)에 김호남과 결혼하여 이미 12살된 딸 재옥이 있는

상태이긴 하나 부친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한 결혼에 처음부터 아무런 애정이 없었기에

부부관계는 냉냉하기만 했고 처음부터 밖으로만 떠돌았다.

김호남이 이혼에 응해주지 않아 애를 먹다가 1949년에 이혼하였다.

 

庚戌,己酉,戊申 대운으로 이어지는 30대 초반 까지의 생은 곤고(困苦)함을

벗어날수 없었다.

특히 1948(戊子) 1949(己丑)년은 군대에서 퇴출까지 당하여 끝없이 방황하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1950년 34세 丁대운 庚寅년 6.25가 터지자 다시 군에 복직되었고 12월에는 육영수

여사결혼식을 올리는등 이때부터 30년간 사오미의 火운을 만나 승승장구 하게 된다.

경인년 신강사주에 寅이 巳를 형하여 刑發하니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복귀하여 官을 얻게

되고 이어서 寅亥합목으로 재성이 들어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6.25 전쟁동안 주로 육본 정보국에 근무하다가 37세, 丁대운 癸巳년(1953)에

장군(준장)으로 진급하였다.

 

45세 丙대운 辛丑년(1961) 5.16 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여 이후 18년 5개월 동안 집권하였다.

58세 甲寅년(1974) 8.15 경축 행사장에서 문세광의 총을 맞고 육여사가 사망하였다.

일주 庚申과 갑경충, 인신충을 이루며 재성이 손상되는 운이다. 

천간으로 오는 甲목은 사주천간의 庚辛에 의해 바로 극을 받으니 흉한중에 일지와도

충을 이루기 때문이니, 庚寅년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여사를 잃었으나, 이사건으로 인해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민주화 세력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정권을 연장 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사주를 감정하면서 한가지 유심히 살펴야할 점이 있다.

사해충으로 巳중 庚금에  의해 손상된 해중 甲목이 처성이되는데 과연 3번의 결혼이

(이현란과의 동거포함) 가능했었겠는가? 하는점이다.

그리고 비록 육여사를 死別하긴 했으나 1950년에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며

1974년 까지 25년간의 결혼생활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단순하게 亥중 甲목을 처로 본다면 1953년 癸巳년과 1965년 乙巳년에 亥를 세운에서

再沖할때 처가 무사하기 어렵다.

 

일간의 록이 되는 일지 申금은 바로 命主의 몸이다.

관성은 본래 육친으론 자식성이되나 이 사주는 일지 申과 합(형,파)이 되는 년지 巳

시지 巳가 모두 처가된다.

따라서 첫번째 부인인 년지巳와 동궁에 자리한 丁화는 당연히 첫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딸 박재옥씨가 되는것이다.

월지 亥수는 식신으로 일간의 행동이 되니  命主가 년지 巳화(본처)를 싫어하여 스스로

내치게 되는것이다. (사해충)

년지 巳와 이별하게 되면서 첫딸인 박재옥과의 인연도 자연 멀어지게 된것이다.

 

시지의 巳화는 巳申합이  유정하게 이루어져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형과 파의 작용은 그대로 일어나 청와대에서도 육박전(陸朴戰 ;육여사

와 박대통령의 부부싸움)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거나 시지의 巳화는 일지와 합이되어 처가되며(이는 해중 갑목이 깨진 상황과

다른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이렇게 통변하는 것이며 단순히 일지와 합이 되었다는 한가지를

보고 얘기하는것은 아니다) 또한 관성으로 자식이 되기도 하니

육여사 死後 큰딸인 박근혜가 모친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수발하며 외국의 귀빈들을

대접하는등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5년간 대신하게 된다. 

상처(喪妻)를하고 허전한 그 마음까지야 딸이 대신 채워줄수 없는 것 이었지만 외견상

청와대 안주인으로써의 역할은 나름대로 잘 해냈음을 사주를 통해 볼수 있다.

이로써 관성인 巳화가 처성이되며 동시에 자식성이 됨을 충분히 이해할수 있을것이다.

 

亥중의 甲목 재성과 일지 록(申)과 합이되는 지지를 함께 살펴야 사주에 나타난 妻의

모습을 온전하게 파악할수 있는 사례에 속한다.  

 

대통령 박정희!

누군가에게는 구국(救國)의 영웅(英雄)으로, 또다른 누군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민주 인사를 탄압한 악랄한 독재자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촌로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소탈하고 꾸밈없는 자연인 박정희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누가, 어떻게 박정희를 평가하던지 대한민국의 역사가 18년동안 그를

불러내서 대통령으로 썼고 또한, 필요에 의해서 김재규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목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유신헌법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가장 강력한 독재자가 이뤄놓은

경제발전의 토대위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수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분명한 사실이니, 박정희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단순히 선과악의 단순한 흑백 논리로

정리될수는 없는것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생전에 그가 했던 이 한마디 말이 어쩌면 박정희 인생의 영광과

오욕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정희 대통령 성명 파자>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나 사주풀이를 올리는 김에 간단하게 적는다

朴 正 熙

 

朴; 점(卜)을 쳐보니 十八年(18년)만 통치하라 했는데,十 +八 = 木 , 木 + 卜= 朴

正; 한번만(一) 더하고 그치겠다고(止)하다가, 一 + 止 = 正

熙; 자기몸처럼(己) 아끼는 신하(臣,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에게 불(火)총을 맞고 생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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