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사망 1927년 12월 20일, 경상남도 거제 - 2015년 11월 22일
- 가족 배우자 손명순, 아들 김현철
- 학력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 수상 2011년 제3회 대한민국 법률대상 입법부문
1995년 유엔협회 세계지도자상 - 경력 2011.07 범국민 안보공감 캠페인 명예위원장
김영삼 대통령 사주
프로필의 생년월일과 달리 1928년 12월 4일 음력 戌시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여부는 알수가 없다.
진술축미의 四庫地을 지닌 제왕사주라하여 일부러 이 사주를 퍼트린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나 사주와 지나온 이력을 대조해 보면
정확하게 일치하니 틀림이 없어 보인다.
여하튼 모든 역학 서적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사주가 1928년 생으로 나와있다.
煙局을 위주로 사주를 살펴보면 먼저 己토 일간이 손궁에서 1-15세
대운이 제왕지에서 시작하여 어려서의 가정 환경이 매우 유복하였음을
나타낸다.
16-30세 離宮대운에 일간이 건록지에 이르니 1954년 만 26세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화려한 정치 인생을 걷게 된다.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여러가지 고난과 어려움이 있기는 했으나
역대의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화려하고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己토 일간이 건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며 開門,天心,直符, 福德등
좋은 星門將을 모두 달고 있으니 정치 지도자로써 뛰어난 인물이다.
또한 건궁에 일간과 시간이 同宮하였고 홍국수로도 4,9금의 겸왕한
孫이 자리하여 모두 충직하고 우수한 수하들을 잔뜩 거느리고 함께하는 모습이다.
중궁의 년간 戊토 부친은 양둔이므로 出艮하여 간궁에 戊加戊의 격국으로
生地에 자리하여 生門,천임,태음을 지니고 있으며 건궁의 일간을 생하니
부친인 김홍조옹은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큰 후원자였다.
김 전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청와대를 찾지 않았다.
이런 김옹을 김 전 대통령도 극진히 모셨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매일 새벽 문안 전화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거제에서 멸치잡이 사업을 크게 하던 김옹은 외동아들인 YS에게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제공했다. 처음 YS가 정계 입문할 때 김옹은 이를 내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YS가 27세이던 54년 자유당 공천으로 거제에서 민의원에 당선되자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선거 때면 집을 팔아 선거 비용을 충당했던 아들에게 그때마다 집을 다시 사 줬다.
명절 때는 자신의 어장에서 잡은 멸치를 선물용으로 올려 보냈다.
당시 정치권 인사치고 ‘YS 멸치’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 비교적 유복하게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부친인 김홍조옹 덕분이니 이는 사주에서 년간 부친이 吉門 吉星을
지니고 있으며 일간을 적극적으로 돕기 때문이다.
1990년 1월 22일 辛未대운 己巳년(기사년 丑월) 61세 3당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여 대표최고위원이 되며 대권 후보로써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재임기간중 하나회척결,금융실명제 등 굵직 굵직한 개혁을 단행하여 90%에 달하는
지지율을 받기도 했으나 1997년 IMF 사태로 일거에 나라의 경제를 망친 대통령으로
지탄을 받으며 쓸쓸한 퇴임을 맞았다.
일간에 함지살이 붙어 도화가 발동하니 젊은시절 다소의 여자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영삼대통령의 실제나이가 프로필과 다른 것은 국회의원(민의원)출마시 나이를 한살
올려서 출마했기 때문이라고 들은바가 있다.
1993년 8월 12일 대통령 긴급명령을 통해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실시되었다.
辛 癸
未 酉
세운의 癸수가 酉금의 생을 받으며 대운의 辛금또한 癸수에 설기되니
癸수는 월간의 乙목을 생하게 된다.
그러나 사주의 원국에서 년간의 戊토가 癸수를 합반 하므로 乙목을 생할수 없으니
세운의 흉함이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66세인 辛未대운 甲戌년은 대운과 세운이 모두 길하다.
IMF가 발생하기 2-3년 전의 김대통령의 운을 살펴보면
1995년 67세 을해년
辛 乙
未 亥
기신인 乙목이 亥수의 생을 받아 왕하나 대운의 辛금에 의해 克去되니
흉함이 나타나지 않으나
1996년 68세 丙子년은
壬 丙
申 子
가색격의 사주에 壬申대운이 흉한데 丙子년을 만나 丙화가 壬수와 子수의
극을 받으니 대흉한 시기이다.
1997년 69세 丁丑년은 IMF가 터진 해인데
壬 丁
申 丑
용신인 丁화가 세운에서 나타나 丑에의해 설기를 당하고 壬수에 의해
克合을 당하니 이는 김영삼 대통령의 사주에서 시지인 戌토가 제1용신인데
戌중의 丁화가 나타나 철저하게 깨지니 이는 바로 戌토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재임중인 대통령의 사주가 이와같이 재임기간중에 철저하게 부서지니 어쩌면
이는 대한민국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IMF 사태가 터진 1997년 丁丑년은 1910년생인 부친 김홍조옹의 년명(庚戌생)인
庚금이 입묘하는 시기이다.(다들 이대목에서 뭔소린가 하고 뜨악 할텐데...)
친구인 朴某가 김홍조 옹의 사진을 보더니 부친이 김영삼 대통령을 만든
제1의 家臣으로 왔네 하고 한마디를 던진다.
기문에서 IMF 사태가 터지기 1년전인 1996년이 辛으로 艮宮 대운인데
이사주는 간궁의 財가 공망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감궁의 부친(년간 戊)은 매우 부유하였고 김영삼 대통령 제1의 후원자 였다.
대통령이 된이후에 戌토가 깨지는 시기에 국가의 경제가 부도가 나는 형태로
財공망이 나타나게 되었다.
부친의 본명성인 庚은 兌宮에서 일간과 比和이다.
소통령으로 지탄을 받으며 적지않은 욕을 먹기도 했던 아들 김현철씨는
사주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시간,시지가 건궁에 일간과 동궁하여 아들인 김현철과는 친구같고 수하같고
동료와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매우 의기상통하여 정치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일반 대중들이 김현철이 나대서 정치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하겠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아들 현철을 보는 시각은 대중들의 평가와는 전혀 다를것이며
또한 일정부분 아들이 아버지에게 힘이 되었다는 것을 김대통령 사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 대중의 평가와 내가 기문둔갑을 통해 풀어내는 내용에서의
아들의 역할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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