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지혜의 글

유가(儒家)에서 전한 요순시대의 역사 왜곡과 단주의 원한. 2

머털도사 오경준 2015. 9. 22. 16:56

중국 華夏족은 동이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였고, 그들의 사서에는 동방

본조의 정식 국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방의 조선을 예맥(),

산융(山戎), 동호(東胡)라고 하여 짐승이나 오랑캐 등으로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뿌리역사를 부정하고 중국 주변의 야만인 집단으로 비하하였습니다.

동방배달의 종주 문화권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문화를 열어나가던 화이족이

동방의 역사와문화를 왜곡 조작하고 華夏중심의 역사관을 만들어 간 것입니다.

공자는 중국의 수치는 감추고 中華ㄷ의 역사를 높이며 夷狄(이적)의 역사를 낮춘다는

이른바 '春秋필법'으로 중화 사관을 정립했습니다.

儒家 사관의 인식에서 요와 순은 성인 제왕의 전범이요 영원한 이상이었습니다.

공자는 도통의 연원이 요에서 순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동방의 원형문화의 황금시절을 감추고 동방의 도통맥을 단절시켜

놓은 것입니다.​

* 書經 순전(舜典)에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는 구절이 나온다.

''(순임금이) 동쪽지역을 순수하여 천제를 지네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마침내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중국 사가들은 東后를 '동방의 제후'라 해석한다. 后는 제후 후(侯)의

뜻이 아니라 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근(覲)은 하현상(下見上) 이라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書經 순전(舜典)의 기록은 중국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단군 조선이

고대 동방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구절이다.​

동방 배달의 천지광명 문화의 심법을 지닌 단주왕자는 부친 요임금과 달리 동방의

동이족과 서방의 화이족(漢族)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대동세계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舜에의해 아버지와의 천륜이 끊어지고 大望이 좌절된 丹朱는 깊은

좌절과 울분에 휩싸였습니다.

대동세계를 열려는 꿈과 야망이 모두 깨져버린 단주는 순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영혼에 깊이 새기게 된 것입니다. ​

 

1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요순시대에 단주가 세상을 다스렸다면 시골

구석구석까지 바른 다스림과 교화가 두루 미치고

2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구별이 없고 오랑캐의 이름도 없어지며, 만리가

지척같이 되어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을 것이니 요와 순의 도는 오히려 좁은 것이니라.

3

단주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한을 품어 순이 창오에서 죽고 두 왕비가

소상강에 빠져 죽는 참상이 일어났나니

4

이로부터 천하의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 쌓여서 마침내 큰 화를 빚어내어

세상을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5

그러므로 먼저 단주의 깊은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 뒤로 쌓여 내려온 만고의

원한이 다 매듭 풀리듯 하느니라.

6

이제 단주를 자미원(紫微垣)에 위(位)케 하여 다가오는 선경세계에서

세운(世運)을 통할(統轄)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4편 30장-

그리하여 상제님은 단주의 원한을 해소하는 과정을 지구촌 가을 통일 문화를

여는 큰 기틀(오선위기 도수)로 삼으셨습니다.

- 증산도의 진리 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