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들여다보면 충신도 많고 의인도 많다. 하지만 일신의 영달과 야심을 이루기 위해 나라를 망친 인물들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 상제님은 ‘안록산’을 언급하고 계신다. 수석성도인 김형렬 성도는 상제님과 함께 천상에 올라가 ‘안록산에 대한 심판공사’를 직접 목격하였다.
이 글에서는 안록산을 통해 당시 당(唐)나라의 역사현실을 살펴보고, 상제님의 공사정신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천상 옥경에 다녀온 김형렬
1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평소에 너의 지극한 소원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조(天朝)를 보고자 하는 것이니 오늘은 이를 허락하리라.” 하시고
2 “내 뒤를 따르라.” 하시니 홀연 천문(天門)이 널따랗게 열리거늘
3 형렬이 날개가 돋쳐 신선이 된 듯 가볍게 하늘을 날아올라 상제님을 모시고 따르니라.
4 천상에 다다르니 문무백관이 상제님의 영(令)을 받들기 위해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데
5 하나같이 환한 관복으로 성장(盛裝)하였고 그 선명한 옷차림이 오색으로 조화되어 인간 세상의 법식과 다르니
6 나아가고 물러남과 온갖 언행의 규범이 정연하고 눈부시며
7 동정어묵(動靜語?)이 우아하고 화락(和樂)하며 환하고 밝아서 마치 어린아이 같더라.
8 굽이굽이 난간에는 봉황이 간간이 울고, 파랗고 노란 지붕에는 상서로운 용이 때때로 돌며
9 뜰 앞에는 온갖 꽃나무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참으로 그윽하니
10 그 갖가지 화초는 인간 세상에서 보지 못한 기이한 것들이더라.
11 또 진기한 새들과 이상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서 혹은 날고 혹은 뛰면서 노래하며 울어대고
12 청아한 선악(仙樂) 소리가 유량한 가운데 선녀들이 아름다이 춤을 추니 그 고운 자태가 황홀하도록 그윽하더라.
13 또 화려하게 채색한 층층의 누대에는 나는 듯한 용마루가 하늘 높이 솟았는데
14 단청 빛깔 또한 지극히 곱고 먼지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여 그 영롱한 광채가 완연히 유리세계(琉璃世界)더라.
천상의 보좌에 앉으신 상제님
15 어느 대전(大殿)에 이르니 안에는 용상(龍床)이 있는데
16 황금과 백옥으로 용이며 봉황이며 거북과 기린, 그리고 온갖 아름다운 짐승들을 새겼거늘 휘황찬란하여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더라.
17 상제님께서 용상에 앉으시니 만조백관이 모두 절을 드리니라.
18 잠시 후에 한 선관(仙官)이 들어와서 상제님 곁에 있는 책상 앞에 앉거늘
19 백금 조각으로 비늘을 한 관을 쓰고 옷을 입었는데 그 의관이 햇빛에 반사되어 온갖 빛깔로 황홀하게 반짝이더라.
20 길고 고운 손은 분가루보다 희고, 그윽하고 서기 어린 얼굴은 흰 눈보다 더 맑으며 붓놀림 또한 놀랍도록 유려하니라.
21 이 때 죄수 한 명이 대전(大殿) 아래에 불려 와 고통으로 절규하며 상제님께 살려 달라고 호소하거늘
22 신장(神將)이 아랑곳 않고 여러 차례 죄를 물으니 그 모습이 지극히 엄중하더라.
(증산도 道典 4:33)
(중략)
형렬이 다시 “대전에 끌려온 죄수는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그와 같이 엄하게 다스리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죄인은 안록산(安祿山)이니라.” 하시거늘 형렬이 여쭈기를 “안록산이 배은망덕한 죄를 지은 것이 이미 천여 년 전의 일인데 지금까지도 미결수로 남아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하매 상제님께서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라를 그르친 큰 죄인은 그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백 년에 한 번씩도 신문(訊問)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35)
치세에 살며 난세를 잊다
안록산(安祿山, ?∼757)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대체로 703년 설이 유력하다. 그는 이란계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족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한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분명 이민족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안록산의 어머니는 돌궐족 장수 안연언과 재혼하였다. 『안록산사적』에는 안연언이 안록산의 의붓아버지[義父]라 기록돼 있는데, 생부(生父)와 함께 돌궐의 실력자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양부(養父)를 따라 소수민족들과 두루두루 사귀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아홉 가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유주(幽州, 지금의 북경 일대)에서 무역을 중개하는 직책을 수행하던 안록산은, 유주 절도사 장수규(張守珪)의 눈에 들어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는 당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주변민족을 토벌하는데 큰공을 세움으로써, 장수규의 크나큰 신임을 얻게 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가 망할 때는 여러 복합적 요인이 누적되다 결정적 사건을 계기로 쇠망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먼저 당(唐) 쇠망의 원인으로 당 현종(李隆基, 685~762)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종은 당나라의 최고통치자로서 치세 초기에 정사(政事)를 잘 펼쳐 ‘개원의 치’라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향락에 빠져 아들의 비인 양옥환(양귀비)을 빼앗는 등 타락의 길로 빠져든다. 현종의 방심은 이임보와 양국충, 안록산 등 간신과 역적들이 판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것이 망국의 불씨로 작용하였다.
안록산, 8년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망치다
장수규의 부관으로 승진가도에 오른 안록산은 거란 토벌전에서 자만하여 많은 병사들을 잃고 말았다. 큰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장수규의 배려로 그는 장안에 올라가 판결을 받기로 하였다. 당시 조정의 실력자 장구령은 그가 ‘모반의 상’을 지니고 있다며, 황제에게 처형을 간언하였다. 하지만 현종은 그를 살려주었고, 이후 양귀비의 양자로 삼는 등 남다른 애정과 관심으로 그를 보살폈다. 이렇듯 안록산에 대한 현종의 총애는 각별한 것이었다.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킬 당시 재상은 양귀비의 종형제인 양국충(楊國忠, ?~756)이었다. 처음 양국충과 안록산의 사이는 무척 좋았다. 하지만 현종의 총애와 권력을 놓고, 탐욕스런 두 인물은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했다.
양국충은 안록산이 모반을 꾀한다고 끊임없이 아뢰었고, 현종으로 하여금 장안으로 불러 그의 충성심을 시험토록 했다. 하지만 안록산은 감쪽같은 연기로 현종을 감동시켜 오히려 깊은 신뢰를 얻어낸다. 이에 양국충은 안록산을 중앙정계의 재상으로 앉혀 힘을 약화시키려 하였다. 병권을 빼앗아 모반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자를 뇌물로 매수한 안록산은, 현종과 조정대신을 속이고 절도사 직을 유지하였다. 한마디로 당 조정의 부패한 현실을 교묘히 이용했던 것이다.
한편 현종이 죽으면 반란을 일으키려 계획했던 안록산은 양국충의 계속적인 압박속에서 급기야 755년 11월, 양국충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거병하였다. 오랜 세월 안락한 생활에 젖어있던 당 조정은 속수무책으로 낙양과 장안을 반란군들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촉 지방으로 달아난 현종은, 영무(靈武)에서 즉위한 황태자(이형, 8대 숙종)에게 보위를 물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안록산과 사사명으로 이어지는 ‘8년 반란’은 당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안사의 난’(755~763)을 계기로 당은 절도사를 증설했는데, 이는 번진(藩鎭, 軍鎭이라고도 함) 할거라는 새로운 풍운을 몰고왔다. 즉 ‘안사의 난’은 번진들의 군웅할거를 초래하여 당의 통치역량을 크게 약화시켰던 것이다. 7대 현종을 거쳐 숙종, 대종을 이어 10대 덕종 때에는 정벌과 회유로 하북 번진의 반란을 잠재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절도사들이 왕을 칭하고, 당의 중앙정부에 대항하였다. 이는 당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어 5대10국시대까지 이어졌다.
‘안록산의 난’은 당(唐)이 번영기에서 쇠퇴기로 나아가는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다. 천보(天寶, 742~756) 13년(753년)과 비교해 전란 후 인구가 7/10이 감소한 것만 봐도 이 반란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전란을 일으켜 국토를 황폐화시켰고, 백성들의 삶을 끝없는 절망으로 내몰았던 안록산. 그가 천상에서 천 년 동안이나 심문을 받으며 여전히 미결수(未決囚)로 남아있다는 도전 말씀에서 역사 심판의 준엄함을 새삼 절감한다.
보은(報恩)하면 살고, 배은(背恩)하면 죽는다
『도전』에서 안록산에 대해 평하는 죄목은 크게 두 가지다. 김형렬 성도가 상제님께 안록산은 ‘배은망덕한 죄’를 지었음을 말씀 올리자, 상제님께서는 ‘나라를 그르친 큰 죄인’이라 평하고 계신다. 사실 배은(背恩)이 안록산의 가장 큰 죄과 중 하나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천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보은이 절대적 가치임을 깨우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출세는 누가 뭐라해도 현종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거병하여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현종이 제위에서 물러나게 하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더욱이 나라까지 망쳐 수많은 민중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다.
상제님은 “반 그릇 밥의 은혜라도 반드시 갚으라”(道典 2:28)고 말씀하셨다. 오직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은혜를 저버린 ‘안록산’을 통해, 상제님은 “보은(報恩)하면 살고, 배은(背恩)하고 나라를 망친 대죄인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심판받는다”는 교훈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계신다.
[출처] 배은망덕으로 나라를 그르친 대죄인 안록산|작성자 풍월주
'진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스트코로나] 사피엔스 사피엔스 (0) | 2021.03.17 |
---|---|
선인 발귀리의 송가頌歌 (0) | 2021.03.01 |
증산도 도전 초판 간행사 (0) | 2020.09.07 |
생불생선지조(生佛生仙之祖) (0) | 2020.07.31 |
저무는 가을녘의 꿀벌 한 마리 … (0) | 2020.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