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그날
위의 가사와 악보는 박두진이 쓰고, 김동진이 곡을 붙인 ‘6.25의 노래’다. 옛적 필자들이 초등학교(初等學校)에 다닐 때는 입에 달고 다녔던 '국민가요(國民歌謠)'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이런 노래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노래’뿐만 아니라 ‘6.25’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일본(日本)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전쟁, 혹은 임진왜란(壬辰倭亂)과 혼동하는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
북한군의 서울 침공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더구나 현재의 초등학교(初等學校) 교과서에서 ‘6.25’는 스치는 이야기 정도로 두 세군 데에 나올 뿐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6.25의 노래’는 너무나 생소(生疎)하고 이해하기 힘든 노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60대 이상 세대들은 해마다 6월이 오면 이 ‘6.25의 노래’를 너무나도 열심히 불렀다. 아이들의 고무줄놀이에도 써먹고, 나뭇길에 지게목발을 치면서 목이 터져라 부르기도 했다. ‘니나노집’에서 노래 밑천이 짧거나 떨어지면 대신 부르는 애창곡(愛唱曲)이 되기도 했었다.
학교에서는 이 애창곡(愛唱曲)을 부르며 가을 운동회(運動會)를 준비했고, 운동회 프로그램에 빼먹지 않고 들어 있던 기마전(騎馬戰)에서도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적군'을 향해 내달리곤 했었다.
그 시절 기마전 모습
고등학교 시절 교련선생(敎鍊先生)님은 매 구절 앞 글자 하나하나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 부르라며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그렇잖아도 이 노래는 애당초 악을 쓰고 부르기에 딱 알맞은 노랫말과 곡조(曲調)를 갖추고 있어 제식훈련(制式訓練)으로 다리 아프고 배고프면 선생님의 호통이 아니더라도 지레 악을 쓰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새, 이 나라에서 ‘조국(祖國)’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원수(怨讐)’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이뿐인가. 저들 침략군들의 딸들이 남쪽으로 무슨 응원이라도 오면 그 미끈한 매력과 기계화된 동작에 매료되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며칠씩 그녀들의 숙소와 응원석을 맴돌기도 한다.
북한 여자 응원단
(일부 국민들은 이들이 한 번씩 나타나면, 보고싶어 사족을 쓰지 못하고 안달이 난다)
북한(北韓)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일컬어 반드시 ‘조국(祖國)’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조국’이라는 말을 쓰면 훨씬 다정해진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는 무슨 대화에서든 '조국(祖國)'이라는 말이 튀어 나오면 '촌놈'취급을 받지 않으면, '덜 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는다. 음담패설(淫談悖說)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이나, 반어적(反語的) 의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투를 몇 번 섞어 넣어야 지성인(知性人)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무심결에라도 '조국'이니 '애국'이니 하는 용어를 쓰면 '구닥다리'나 전근대적(前近代的)인 퇴물로 매도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다 북한군(北韓軍)의 6.25남침(南侵)을 듣도 보도 못한 일부 운동권(運動圈)에서는 그 전쟁에서 죽다가 살아난 세대가 눈을 부릅뜨고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엄연한 '남침'을 한사코 '북침(北侵)'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북한군 서울침공 장면
(6.25가 '북침'이면 왜 이들이 우리의 수도 태평로까지 왔을까)
어쨌든 한반도의 남쪽에서 사라진 ‘조국(祖國)’이 그나마 북쪽 땅에서 위력(偉力)을 발휘하고 있으니 다행이랄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금의 ‘6.25의 노래’는 차라리 북한(北韓) 어린이들이 불러야 할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북한은 6.25전쟁을 ‘북침(北侵)’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6.25때 북한군에 의해 '인민의용군'으로 징집된 서울시민들
(우리가 '북침'을 했다면, 어떻게 서울시민들이 미제 'M1소총'이 아닌 소련제 '장총' 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할까. 소련에서 우리에게 무기 지원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어쨌든 ‘6.25의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事實上) 잊혀진 노래가 되고 있다. ‘민족공조(民族共助)’라는 큰 물살 때문이다. 어느 해이던가, 국방부(國防部)가 제작한 포스터에 국군과 북한의 인민군(人民軍)이 형제처럼 나란히 다정하게 그려져 있어서 말썽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원수(怨讐)’와 ‘적군(敵軍)’이 어느 한 순간 그림 한 장으로 ‘친구’와 ‘형제’가 되어버렸던 이 해프닝도 ‘민족공조’의 큰 그림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6.25의 노래를 두고 그 가사가 초·중등(初中等)학생들이 부르기에는 너무 섬뜩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필자가 생각해도 가사가 너무 극단적(極端的)인 용어로 구성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를 함께 나눈 동족으로서 평화로운 이 나라를 침공하여 100만명이 넘는 무고한 인명(人命)을 살상한 저들은 '원수'일 수밖에 없었고, "쳐서 무찔러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었다.
사정이 이러했는데도 지금 세대들은 그 노래가 대단한 오류(誤謬)라도 있는 양 비난일색(非難一色)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 노래의 근원인 '6.25동란' 자체를 마치 없었던 일이거나, 우리 쪽이 뭔가를 잘못해서 일어난 사단이나 되는 것처럼 슬그머니 교과서(敎科書)에서도 지우고, 노래책에서도 지우고 있다.
털끝만큼도 본받을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일본인(日本人)과 일본정부의 근성(根性)이라도 닮았으면 한다. 63년전 순박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어버이들과 어린 여성들을 보국대(報國隊)와 정신대로 끌어다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만행을 저지른 일제(日帝) 출신 일본정부 관리들은 지금도 그때의 그것은 만행(蠻行)이 아니었다는 책을 만들어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세뇌교육(洗腦敎育)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그들보다 5년이나 뒤인 1950년, 평화로운 일요일을 즐기던 우리들의 머리위에 포탄과 폭탄(爆彈)을 쏟아 부어 100만명이 넘는 무고한 우리 국민들을 살상(殺傷)한 북한공산주의자(北韓共産主義者)들의 만행과 '6.25동란'의 참상(慘狀)은 무슨 창피한 일이라도 되는 양 쉬쉬하고 감추려고만 하고 있다.
북진하는 국군
(얼어붙은 한탄강을 건넌 이들은 절반도 살아오지 못했다)
이래서는 안된다. 노래의 가사가 지금의 국민정서(國民情緖)에 맞지 않는다면, 그에 맞춰 개사(改詞)를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개사된 '6.25노래'로 '6.25의 원혼'들을 달래줘야 한다. 가해자(加害者)의 눈치를 보느라 비굴하게 몸을 움츠리지 말고, 100만명의 원혼(冤魂)들에게 제사(6.25 기념행사)라도 제대로 드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와 못난 후대(後代)들이 '6.25숨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몰골이 너무나 한심하여 한 작가(作家)가 기존의 ‘6.25의 노래’를 개사(改詞)하여 ‘신 6.25 노래’라는 것을 지어 발표한바 있어 이를 소개한다. 지금의 ‘6.25 노래’가 학생들의 정서(情緖)에 맞지 않는다면, 자기가 지은 노래로라도 그 당시 희생된 원혼(冤魂)을 달래주자는 취지에서 지은 시라고 한다.
어쩌다 ‘6.25’에 대한 얘기조차 듣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개사(改詞)된 가사라도 반갑게 생각된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6.25’는 우리 민족사(民族史)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겨준 사변(事變)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피해는 인적피해(人的被害)다.
6.25 전상자
‘6.25전쟁’으로 인해 우리 국군(國軍)의 사망자는 무려 137,899명에 이르며, 실종자(失踪者) 수는 32,838명이나 된다. 부상을 당한 국군도 450,742명에 이르고 있다. 민간인(民間人)들의 사망자는 학살당한 사람까지 합쳐서 37만여 명에 이르며, 부상당한 사람도 23만여 명에 이른다는 통계다. 여기에다 피난민(避難民)이 240만여 명, 전쟁고아가 10만여 명이나 발생했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20만여 가정, 청상과부도 20여만명이나 발생했다. 부상자도 그냥 부상자가 아니다. 팔과 다리를 잃고, 악성 총상으로 신음하다가 조금 남은 논밭전지마저 모두 탕진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전쟁고아
(부모는 모두 살륙당하고 병든 개처럼 버려져 있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미국(美國)을 포함한 유엔군의 피해는 전사자가 3만6천9백여 명이고, 11만6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실종(失踪)되거나 포로가 된 병사들이 6,9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북한군(北韓軍)과 중공군에 비하면 유엔군의 희생은 적은 규모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은 북한군과 중공군(中共軍) 같이 남의 나라를 침략(侵略)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저들의 침략을 막아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소중(所重)한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중공군에 생포되는 유엔군
침략자인 북한군(北韓軍)과 중공군은 당연한 손실이어야 하지만, 우리와 우리들의 우방군(友邦軍)은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피해를 도표화하면 다음 표와 같다.
6.25 동란에 따른 양측 피해
※ 북한군의 전사/사망자에는 그들이 학살한 북한동포를 포함한 수이며, 실종/포로는 그들이 납치하였거나, 행방불명이 된 자를 포함하고 있음.
유엔군 측 국가별 사상자
‘민족공조’도 좋지만, 상대방(相對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 엄청난 민족적(民族的) 비극과 관련된 노래까지 자라나는 세대와 단절시키는 처사는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70만에 이르는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숙부님과 형님들, 남편과 오라버니들, 그리고 4만 명의 외국청년(外國靑年)들의 목숨을 제물(祭物)로 바친 그 전쟁을, 더구나 침략자(侵略者)들을 막고 나선 그 거룩한 희생들을 이렇게 깔아뭉개고 호도해도 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당국자들에게 건의한다. ‘6.25’와 ‘6.25노래’를, 그리고 ‘6.25의 원혼(冤魂)’들을 이렇게 홀대하고 폄훼(貶毁))해서는 안된다. ‘민족공조(民族共助)’는 민족공조대로 추진하고, 조상(6.25원혼)에 대한 제사(祭祀 ; 6.25행사)는 제사대로 모셔야 한다.
‘6.25원혼’들에 대한 제사(祭祀)가 ‘6.25행사’이고, 그 제사의 추모가(追慕歌)가 ‘6.25의 노래’이며, 자라나는 세대에 대하여 ‘6.25’를 올바로 상기(上記)시키는 일이 제주(祭主)이자 후대로서의 소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과서를 개편하고 노래가사를 개사(改詞)해서라도 당장 제대로 된 ‘6.25제전(祭典)’을 준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천인공노할 침략전쟁(侵略戰爭)을 일으킨 간악한 일본인(日本人)들은 순박한 우리들의 어버이와 딸들을 보국대(報國隊)와 정신대(挺身隊)로 끌어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망나니짓을 벌여놓고도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다'는 교과서(敎科書)를 만들어 쇠뇌를 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땅에서 벌어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엄연한 사실마저 축소하거나 망각(妄覺)하려 하고 있다.
6.25에서 지금까지 신성한 병역을 면탈(免脫)한 무리들은 세상이 좁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하고 있는데, 남들과 같이 배운 것도 요령도 없어 고분고분 전쟁터에 나간 그들 원혼들은 한줌의 재로 돌아왔거나,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 유골(遺骨)도 행방도 찾지 못하고 있다.
겨우 1주일 동안 사격연습을 때우고 최전방 고지에까지 떠밀려가 항일유격대(抗日遊擊隊) 활동과 국공내전(國共內戰)의 실전에서 전투력을 쌓을 대로 쌓은 북한군과 팔로군(八路軍) 출신 중공군을 상대로 '께임'도 안되는 전투를 하다가 총 몇 방 쏘아보지도 못한 채 죽어간 그들 새파란 원혼(冤魂)들을 이렇게 유기하고 냉대(冷待)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남침 중 중앙청을 점령하고 춤을 추는 중공군들
(아직도 6.25를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운동권에서는 이들 중공군들이 그 먼 중국땅에서 왜 우리의 수도 '서울'까지 와 있으며, 무엇이 좋아 춤을 추고 있는지를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개미떼 같이 기어 올라오는 적병(敵兵)들 앞에서 "소대장님! 총알이 안나가요"라며 울부짖다가 처참하게 쓰러져간 그들 무지렁이 소총병(小銃兵)들의 절규가 '조국'과 우리들 후대들에게 이웃집 강아지 죽은 것보다 못한 이 따위 '홀대'를 자청(自請)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속 깊이 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필자가 봐도 지금의 ‘6.25노래’ 가사는 어린 학생들이 부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국에서 선도(先導)하기 곤란하다면, 음악계(音樂界)에서라도 자진하여 새로운 가사(歌詞)로 가다듬어 당당하고 숙연하게 6.25를 말하고 노래했으면 한다.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스스로 격앙(激昻)되는 것 같아 이쯤에서 파일을 접는다. 장삿꾼들의 사이트에서조차 '6.25노래'를 지워버려 다른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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