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주 수행

信言不美(신언불미) 도덕경 81장 해설과 기도하는 法

머털도사 오경준 2012. 7. 17. 14:47

 

信言不美  美言不信  신언불미  미언불신  

 

 

善者不辯  辯者不善  선자불변  변자불선 

 

知者不博  博者不知  지자부박  박자부지

 

미더운말(진실된 말)은 미려하지 않고

꾸민말(아름다운 말)은 진실되지 못하다. 

 

선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어눌하고)

구변이 좋은 사람은 선하지 않다.

 

진실로 아는자는 박식하지 않고 (깨달았다고 해서 넓게 아는것은 아니며)

박식한 자는 진실로 아는것이 없다.(넓게 안다고 해서 깨달은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책에서

知者不博 을 넓게 안다 하여도 깨달은 것이 아니고

博者不知 를 깨달았다 하여도 넓게 아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설명하여 앞뒤 구절의 설명을 바꿔서 해놓았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 .

글의 전체적인 맥락이야 별문제가 없는 것 이지만,

 

머털도사가 쓸데없는 蛇足을 덧붙인다.

 

知는 단순한 앎(識)이 아니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知로써

깨달음을 통해 事物의 본질을 꿰뚫어서 아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博이란 博學(박학:널리 배워)하여  多識(다식;아는것이 많음) 함을 이르는 말이다.

 

信言不美에서 信이란 실답다(實)는 것이다. 참되다는 것이다.

 

수행이란 모름지기 참됨(誠)을 얻는것이며

信의 이치는 오직 자신을 닦음(修)으로 얻을수(得) 있는 것이다.

 

도덕경의 이 구절을 읽은 사람이야 수없이 많겠지만

信이라는 단 하나의 글자를 깨친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信의 이치를 참되게 깨쳤다면 그 사람은 賢의 경지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 해도

君子의 경계는 넘어섰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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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마음, 미움과 분노 원한과 질투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본능적으로

솟아 오르는 것으로 인간의 본능적 욕망(탐욕,애욕,식욕)과 같은 것이다.

이런 마음이 솟을때는 그 대상을 향해 그때마다 쉬지말고

"항상 공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겠습니다" 하고 수시로 기도해야 한다.

 

사무치도록 그립거나 미운 사람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생각나고 잠자면서 꿈속에서도

나타나지만, 자신이 신앙하는 기도와 경배의 대상인 하느님이나 부처님, 예수님을 하루에

열두번씩 생각하고 잠자면서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하느님께 부처님께 기도를 해도 내마음이 본능적으로 24시간 그분을 향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기도는 작위적인 것이라 자신의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도달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미치도록 보고 싶거나 아니면 미운경우 그것은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과 같다.

미운 대상을 향해서 "항상 공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겠나이다" 하고 기도하고

보고싶은 대상을 향해서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잘 지내 십시요"하고

그 마음(그리움,미움,원한,원망)이 솟아오를 때마다 기도를 하게 되면

그 마음은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누군가가 미치도록 보고싶고 그리워 상사병이 걸릴 지경인데 다행히도 사랑하는 그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 . 

그 결혼이 과연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까요?

이는 과거의 業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수행과 기도란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저장된 부정적인 思念의 찌꺼기 들을 정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을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죄는 자신이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뉘우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지은 죄와 입(말)으로 지은죄는 그 흔적이 잘 남지 않아(자신이 생각할때)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우므로 제대로 알고 뉘우치기가 어렵습니다. 

 

'조셉 캠벨'이란 사람이 '신화의 힘'이란 책에서 罪에 대하여 정의하길

"인간이 죄를 지으면 생명의 조화가 깨진다" 고했습니다.

참회란 바로 "깨어진 인간 생명의 조화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修行은 반드시 참회와 기도를 바탕으로 합니다.

자신이 어떤죄를 지었고 어떤 업식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지도 모른채 참회는 하지않고

그저 화두만 틀고 앉아 있거나 단전에 기를 모아 임독맥을 돌린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거나

仙藥(선약)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전에 TV를 보다가 체널을 돌렸는데 아마도 70년대 정도에 제작된듯한 이름도 알수없는

무협영화를 하더군요. 도교 사원이 나오는데 사원에

<樂生於知> 라는 글귀의 주련이 보이더군요.

知란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지혜(智慧)이니, 樂生於知라는 글의 뜻은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지혜에서 진정한 즐거움(樂)이 나온다. 이런 뜻일겁니다.   

 

<노자 도덕경> 그 짧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제가 그저 생각나는 한 귀절에 蛇足을 달려니 얼굴이 다소 간질거리긴 합니다.

 

인연이되어 잠시나마 제 블러그를 찾아오신 모든 분들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천성이 게을러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