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카모토 료마.
일본사를 공부하면서 한 번은 들어본 이름이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칼을 든 무사? 예, 이들은 모두 일본이 자랑하는 사무라이 출신입니다.
오늘은 일본의 사무라이, 그 정신과 어원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선진 역사를 많이 배워갔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고, 중국에서 배웠다는 등의 거짓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그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조직입니다.
정확하게는 배달의 삼시랑에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배달의 삼시랑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교를 알아야 합니다.
유교 불교 선도가 나오기 이전,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우주의 통치자이신 삼신상제님을 믿고 생활하였습니다.
수행을 해서 삼신상제님을 직접 체험하고 그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했지요.
이것이 인류 최초의 정신문화인 신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교, 유교, 선도도 삼신상제님을 받들었던 신교의 토대 위에서 탄생했답니다.
그리고 이 신교를 받드는 젊은이들을 낭郎이라 불렀는데요.
낭郎에 家(집 가)를 붙여서 신교를 받들던 사람들을 낭가郎家라고 불렀습니다.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에서 동방으로 역사 개척을 오신 환웅천황께서는 무리 3000명과 함께 오셨어요.
환웅천황께서 이끌고 오신 무리 3000명이 바로 낭郎, 낭郎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하여 핵랑核郎이라고 불린 이들이었답니다.
후에 이들은 세상을 구하러 동방으로 왔다 하여 제세핵랑濟世核郎이라고 불리기도 했답니다.
동방으로 오신 환웅천황께서는 백두산 신시에 도읍을 열고 배달국을 건설하셨는데요.
환웅천황은 함께 온 핵랑核郎을 국가 조직으로 제도화하셨답니다.
삼신상제님(三)을 모시는(侍) 낭(郎)이기 때문에 삼시랑三侍郎이라는 관직을 만드셨는데요, 이들을 줄여서 삼랑三郎이라고 하였답니다.
이 삼랑三郎에서 일본의 사무라이의 어원이 나왔답니다.
우리는 삼랑이라고 불렀지만, 일본어는 받침을 거의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삼三은 사무さむ, 랑郎은 라이らい가 되어 사무라이さむらい 가 된 것이지요.
일본에서 맥도날드를 마그도나르도マクドナルド라고 발음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사무라이さむらい에 대한 표기인데요. .
일본에서 사무라이는 さむらい로 표기하지만 한자로 표기할 때는 侍(모실 시) 자로 표기합니다.
이것은 삼시랑三侍郎의 시侍를 따온 것으로 삼신상제님(三)을 모시는(侍) 낭(郎)에서 모신다(侍)는 의미가 강조된 것이지요.
후에 삼신상제님을 모셨던 삼랑三郎 - 사무라이侍는 신교문화를 잃어버리면서 주군을 모시는 무사 집단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됩니다.
이런 삼시랑三侍郎 문화는 일본에만 사무라이 문화로 그 흔적이 남아있을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삼시랑三侍郎은 일본에서 사무라이라는 무사집단으로 그 어원만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신교를 받들고 역사를 개척했던 그 정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배달의 삼시랑三侍郎, 삼랑三郎은 고조선 때는 국자랑 조직으로 계승됩니다.
그런데 국자랑은 머리에 천지화라는 꽃을 꽂고 다녔다고 하여 천지화랑으로 불렸다고도 합니다.
천지화랑, 우리가 아는 화랑이 맞습니다.
신라의 화랑이 이 천지화랑에서 나온 말이지요.
그리고 북부여 때는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의 화랑, 백제의 무절로 전해져 내려왔지요.
이렇게 전해 내려왔던 삼랑의 정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히게 됩니다.
고려는 불교,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우리 고유의 신교 정신이 점차 잊혔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동방에 새 문명을 열었던 삼시랑三侍郎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하지만 우주의 계절이 바뀌고, 모든 것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의 이 때! 삼시랑三侍郎은 가을문화를 건설하는 주인공으로 재탄생하였지요.
그것이 바로 증산도의 태을랑입니다.
전 세계를 향하여 역사 개척을 하고 새로운 가을문화를 건설하는 증산도의 태을랑, 그들은 무려 일만 년의 역사를 가진 역사의 주인공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사무라이侍는 삼시랑三侍郎에서 나왔지만 후에 주군을 모시는 사무라이侍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지요.
그런데 사무라이가 주군을 잃으면 로닌ろうにん으로 불리게 됩니다.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 로닌은 소설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음식을 구걸하거나 도적질, 살인청부와 같은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지요.
모셔야 하는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는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요.
주군을 잃은 로닌의 삶은 삼랑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태을랑의 주군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역사의 주인공 태을랑, 그들의 侍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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